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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를 말하다… 성경 이야기, 왜 예수의 복음이 핵심인가

팀 켈러

  • 기사입력 2023.05.23 17:13
  • 최종수정 2023.05.25 16:44
  • 기자명 더미션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덕의 상실’(After Virtue)에서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필수적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일면식도 없는 한 청년이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자신에게 다가와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을 그린다. “그 청둥오리의 이름은 히스트리오니쿠스, 히스트리오니쿠스, 히스트리오니쿠스입니다.”

그는 청년이 말하는 문자적 의미는 알고 있었지만, 그 말과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일에 들어맞는 배후 이야기를 알아내는 것이다. 어쩌면 그 청년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슬픈 인생사는 모든 상황을 단숨에 설명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만일 어제 도서관에서 누군가가 이 청년에게 다가와 청둥오리를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는데, 오늘 그 청년이 자신을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으로 착각했다면 어땠을까. 이러한 일상적인 이야기도 이 상황을 잘 설명해 줄 것이다. 또한 청년이 사전에 계획된 접선을 기다리면서 세련되지 못한 암호로 상대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리는 외국 스파이인 경우도 가정할 수 있다. 이러한 극적인 이야기도 상황을 이해하도록 도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 글의 제목은, 성경이 단지 잡다한 이야기와 자료의 모음집이 아니라는 중요한 전제를 포함한다. 성경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다. 이는 성경이 치밀하게 구성된 소설처럼 단 하나의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성경은 많은 개별 이야기일 뿐 아니라 내러티브가 아닌 다른 종류의 문헌들도 포함한다. 그러나 J. R. R. 톨킨이 수천 쪽의 내러티브 시 논문 지도 심지어 수십 년에 걸친 역사와 관련된 사전까지 만들어 포괄적인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성경의 모든 부분의 저자이신 하나님도 그분이 창조한 실제 세계에 대한 하나의 포괄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이 이야기에서는 모든 부분이 서로 연관되고 모든 조각이 이치에 들어맞는 하나의 기본 줄거리가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심히 좋’은 - 현재 세상을 지배하는 타락 부패 죽음(롬 8:20~21)이 없는 - 세상을 창조하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창 1:31) 하나님은 그분의 걸작인 인간을 세상에 두셨으며,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다.(창 1:27)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도록 창조되었다. 만일 그와 같이 살기로 선택했다면 우리는 온전하게 행복한 삶과 완전한 세상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우리는 자신의 뜻을 만물의 척도로 삼아, 하나님이 우리를 섬기고 우리가 원하는 일을 행하시기를 기대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이웃을 사랑하는 대신, 우리는 자기중심적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에게 돌아섰다.(창 3:1~7)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에, 다른 모든 관계 - 다른 인간, 우리 자신 그리고 창조 세계와의 관계 - 도 단절되었다.(창 3:8~19) 그 결과는 영적·정신적·사회적·육체적 부패와 붕괴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중심이 유지되지 못하며/ 무정부 상태만이 세상에 횡행한다.”(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재림’) 이는 죄 아래 놓인 오늘날의 세상을 묘사한다.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는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응답은 진노였는가. 사랑이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둘 다 맞는다는 것이다.(롬 1:18, 요 3:16) 하나님은 진리를 드러내시고, 옳은 일을 행하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시며, 모든 불순종과 악을 벌하겠다고 경고하신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모두가 죄로 멸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구원 목적을 밝히며 사랑으로 인간을 붙드신다. 여호와는 새로운 인간 사회 -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법과 사랑과 은혜를 아는 이들의 사회 - 를 창조하기 위해 한 백성을 자신에게로 부르신다. 이 공동체는 한 대가족으로 시작되었고(창 12:1~8) 하나님이 그들에게서 한 민족 곧 이스라엘 백성을 창조하셨으며, 그들을 종살이에서 구원하여 모세의 지도 아래 세우셨다. 하나님은 이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셨고, 그 언약 안에서 그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들 또한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겠다고 약속했다.(출 19:1~8) 그러나 이 언약의 역사는 실패로 돌아갔으며, 하나님이 그 백성을 부르신 목적은 거의 실현되지 못했다.

모든 이야기의 줄거리에는 ‘긴장’의 요소가 있고, 그 긴장이 팽팽할수록 독자들을 강렬하게 사로잡는다. 긴장은 사태를 바로잡으려는 분투에서 다루기 힘들어 보이는 힘들이 충돌하면서 발생한다. 여기서 우리는 왜 성경이 실제로 하나의 이야기인지 알 수 있다. (우리가 구약이라고 부르는) 성경 전체의 3분의 2에 걸쳐 한 가지 문제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지만, 이는 점점 더 긴급해지고 외관상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악과 불의와 부정을 준엄하게 다루시지만, 그럼에도 그분은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자기중심적인 한 민족과 관계를 맺으신다. 그분은 언약의 약속에 따라 죄에 대해 반드시 벌하리라고 말씀하신 그 저주로 자기 백성을 멸하실 것인가, 아니면 죄와 관계없이 자기 백성을 용서하고 사랑하실 것인가. 만일 하나님이 둘 중 하나만 행하신다면, 죄와 악이 이긴 셈이 될 것이다. 하지만 둘 다 행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세우신 언약 관계는 조건적인가(그래서 실패와 형벌이 따르는가). 아니면 무조건적인가(그래서 백성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언약은 유지되는가).

그 대답 역시 둘 다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배경은 이사야서가 가장 근접하기도 해도 구약성경 전체에 숨겨져 있다.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실행하는 영광의 왕은 곧이어 하나님의 심판을 짊어지는 고난의 종이 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 오셔서, 우리가 취해야 했던 삶의 모범을 보이시고 우리가 겪어야 했던 죽음을 대신 짊어지셨다. 그리스도는 온전한 삶을 사심으로 하나님께 순종에 대한 복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불순종의 저주를 대신 당하신다.(갈 3:10~14)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리스도는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우리는 영생을 선물로 받는다.(고후 5:21) 그리스도는 죄악을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모든 죄에서 궁극적으로 해방시키신다. 그분은 영광스러운 새 몸과 온전하고 새로운 세계를 가져오기 위해 그 일을 행하신다.(롬 8:18~39)

가장 탁월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에는 중대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며, 놀랍고도 예기치 못한 해결책 또한 제시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성경보다 더 위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 이해관계는 말 그대로 우주적이다. 모든 사람과 만물이 여기에 얽혀 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 곧 전적으로 선하고 자비롭고 의롭고 공평하면서 - 여전히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겉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해도 소망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승리는 한 사람이 십자가에서 죄를 완전히 벌하시고 값없는 구원을 베풀어 주신다. 그 결과, 그분은 의로운 동시에 믿는 이들을 의롭다고 하시는 분으로 계시된다.(롬 3:26) 예수께서는 궁긍적인 주인공, 곧 모든 영웅의 영웅이시다.

성경의 근본 줄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 사이의 긴장이며 그 긴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모두 해소된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에 제자들에게 구약 전체 -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눅 24:44) - 가 그분에 관한 것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다.(눅 24:27, 45) 바울은 성경 전체에 걸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고 말한다.(고후 1:20) 따라서 성경의 모든 내용 - 성경의 모든 주제와 패턴, 주된 이미지와 주요 인물들 - 은 예수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솝 우화와 같은 이야기 모음집이 아니며, 하나님을 발견하고 올바로 사는 법을 통찰하게 하는 허구적 이야기도 아니다. 그보다 성경은 참된 역사이며, 하나님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우리를 발견하시는지에 대한 통일된 이야기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살고 죽으신 것은, 우리가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구원받고 새롭게 창조된 세상 곧 하나님의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계 21~22장)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근본 줄거리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과 원리와 명령이 주어진다. 그러나 성경은 일차적으로 우리에 관한 책이나 우리가 해야 할 일에 관한 책이 아니다. 성경은 무엇보다도 예수에 관한 책이며, 예수께서 행하신 일에 관한 책이다.

성경이 가장 위대한 이야기인 까닭은, 단지 이 이야기에 무한히 큰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그 해결책이 끝없는 놀라움을 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이 이야기의 변화시키는 능력에 있다. 성경 이야기는 오늘날 서구 세계에서 지배적인 이야기 - 우리는 우연의 산물이고 적자생존이라는 유일한 작동 원리를 특징으로 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자신을 위한 이기적 창조 외에는 다른 어떤 목적도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 -와 얼마나 다른가. 버스 정류장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매킨타이어의 반응은, 그 사건의 배후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와 같이 고난과 죽음, 돈, 섹스, 권력 등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예수에 관한 성경 이야기를 어떻게 믿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 글은 ‘성경 신학 스터디 바이블’에 실린 켈러 목사의 소논문으로, 복있는사람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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