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햇빛 속에서 지금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그의 얼굴엔 경악과 희열, 황홀한 빛이 서려 있었다. 그리스도였다. 늙은 사도 베드로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쿠오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베드로의 귀에는 맑지만 아주 슬픈 주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대가 나의 어린 양들을 저버렸으니 내가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로마로 간다.” 꼼짝 않고 땅에 엎드려 있던 사도는 몸을 일으켜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오던 길을 되돌아 다시 로마로 향했다.”(‘쿠오바디스’ 중)폴란드의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 시절을 다시 돌이킬 수 없다 해도/ 우리 슬퍼하기보다, 차라리/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 지금까지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인간의 고통에서 솟아 나오는/ 마음의 위안을 주는 생각과/ 죽음 너머를 보는 믿음에서/ 사색의 마음을 가져오는 세월 속에서.”(‘초원의 빛’ 중)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 자연주의 시인, 호반의 시인….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사진)를 수식하는 말이다. 영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워즈워스의 시 한 구절 정도는 암송할 정도로 지금까지 많은 사
“나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슬픈 노래 부르지 마세요/내 머리맡에 장미도/그늘진 삼나무도 심지 마세요/위에 녹색 잔디를 덮어/소나기와 이슬방울에 젖게 두세요/하여 생각나면 기억하시고/잊으려거든 잊으세요/그림자도 못 보고/비도 못 느낄 거예요/나이팅게일이 고통스레/울어대도, 안 들릴 거예요/뜨지도 지지도 않는/황혼 속에서 꿈꾸다가/어쩌면 기억할지도/어쩌면 잊을지도 몰라요.”(‘나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영문학사에 기록된 가장 아름답고 슬픈 시 가운데 하나인 ‘나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를 쓴 크리스티나 로세티(1830~1894·사진
“주님, 제가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제힘으로는 더 이 괴로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 제가 처해 있는 시간은 이제 삶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저는 무거운 살과 피를 지니고 그런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25시, 그야말로 구원을 받기에도, 죽기에도, 살아가기에도 너무 늦은 시간입니다. 실로 모든 것이 너무 늦었습니다.”(‘25시’ 중)루마니아의 작가이자 성직자였던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1916~1992·사진)는 생애 동안 한국을 세 번이나 방문해 한국인들에게 다소 친숙한 이름이다. 그가 한국에 남다른 관심을 두었
“새장에 갇힌 새는 두려움에 떨리는 소리로 노래를 하네/ 알 수 없지만 여전히 열망하는 것들에 대해/ 그 노랫가락은 먼 언덕 위에서도 들을 수 있다네/ 새장에 갇힌 새는 자유를 노래하니까….”(마야 안젤루의 시 ‘새장에 갇힌 새는 두려움에 떨리는 소리로 노래를 하네’ 중) 미국의 작가 마야 안젤루(1928~2014·사진)는 토니 모리슨, 오프라 윈프리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으로 꼽힌다. 그의 삶의 밀도는 촘촘하고, 모양은 굴곡지다.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대에 그는 한계에 도전해 소설가, 시인, 가수, 배우, 영
‘스토 부인’으로 불리는 미국의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1811~1896·아래 사진)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은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다. ‘활자가 된 노예의 슬픔’이 담긴 이 한 권의 책이 당시 미국 문명의 물줄기를 바꾸는 마중물이 될 줄 아무도 알지 못했다. 19세기 미국은 성직자들이 앞장서 기독교의 만민평등의식에 어긋나는 노예제도를 옹호하는가 하면 묵인하는 상황이었다. 노예제도의 수용은 미국 사회가 기독교 정신을 저버리고 이기주의 물질주의 합리주의를 택했음을 보여줬다. 이에 미국이 이상적인 기독교 국가로 발전하길 염원했
18세기 영국소설의 ‘개척자’인 동시에 ‘완성자’라는 평가를 받는 제인 오스틴(1775~1817·아래 사진)은 장편소설 ‘오만과 편견’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이다. 일생 6권의 소설을 남긴 오스틴은 ‘예민한 관찰자’였다. 그의 작품들은 인간관계와 사회계급제도뿐 아니라 여성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FR 리비스 교수가 ‘위대한 전통’이란 소설론에서 영국 소설을 짊어질 영예를 다섯 작가에게 부여했는데, 그는 영국소설의 ‘위대한 전통’이 제인 오스틴에서 시작해 조지 엘리엇, 헨리 제임스, 조지프 콘래드를 거쳐
18세기 중엽 영국 지성을 대표하는 새뮤얼 존슨(1709~ 1784·아래 사진)은 시인이자 평론가이다. 그리스도교적 색채를 담은 그의 작품들은 17세기 블레즈 파스칼과 19세기 쇠렌 키르케고르의 영적 계보를 잇는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신앙적으로는 성례전과 교회의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교회파(High Church) 성공회 신자였다. 그의 글쓰기는 자기 성찰에서 시작한다. 거기에 성서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합해 모두에게 적용 가능한 도덕률과 원리를 전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의 인생관이 담긴 소설 ‘라셀라스’이다. 국내 독자들
19세기 미국 문예 부흥기의 대표적인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1804~1864·아래 사진)은 인간 본연의 문제를 영적인 관점으로 심도 있게 그려낸 작가이다. 그는 대다수 작품에서 엄격한 청교도 사회를 소재로 인류의 영원한 과제인 ‘선과 악’ ‘죄와 영혼’의 문제를 다뤘다. 그의 대표작 ‘주홍글씨’(1850)는 미국 문학사에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작품은 죄의 보편성과 인간의 선택이 지닌 복잡성을 다룬 미국의 ‘상징 소설’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미국적인 관점에서 죄의식과 윤리 문제를 다뤄 미국 문학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는
영국의 계관시인 앨프리드 테니슨(1809~1892·아래 사진)은 아름다운 운율을 담은 작품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빅토리아시대(1837~1901)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가 쓴 영성의 시어들은 당시 싹트기 시작한 유물주의 사상, 황금만능주의, 향락주의 등을 배격하며 영국 국민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다. “나는 여행을 그만두고 살 수가 없다. …얼마나 지루한 일인가! 멈춘다는 것, 끝낸다는 것, 광을 내지 않아 녹슬어 버린다는 것, 사용해서 빛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 버린다. 하지만 끝나기 전에/고귀하고
‘신비의 시인’으로 불리는 영국의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아래 사진)는 뛰어난 상상력과 시대를 앞선 통찰력으로 기독교적 인식을 확장한 초기 낭만주의 시인이다. 그의 이름이 낯설다면 존 밀턴의 ‘실낙원’이나 단테의 ‘신곡’을 떠올려보자. 그 작품에 삽입된 독특하고 강렬한 그림을 그린 사람이 바로 윌리엄 블레이크이다. 미국의 스티브 잡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마다 그의 시를 읽었다고 한다. 그는 시인이기 이전에 화가였다. 14세 때 판화가 제임스 베서의 도제로 들어가 7년간의 견습 과정을 거쳐 전문 판화가가 됐다. 2
영국 작가 대니얼 디포(1660~1731·아래 사진)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 ‘표류기’ 하면 떠오를 정도로 지금까지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 영감을 주는 고전이다. 그러나 ‘로빈슨 크루소’를 폭풍우로 배가 난파돼 무인도에 표류한 이후 28년 넘게 지내다 구출된 사람의 이야기 정도로 이해한다면 오해다. 소설은 고립무원이 된 한 인간이 고난과 역경을 통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묘사한 ‘영적 표류기’이다. 사실주의적 묘사로 영국 근대문학 효시로 평가받는 이 소설은 주인공의 28년에 걸친 무인도 생활 속
“사람은 누구도 혼자만의 섬이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대륙의 한 조각이요, 본토의 일부다. 만일 흙덩이 하나가 바닷물에 씻겨 간다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지는 것이다. 이는 곶(岬)이 쓸려 간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며, 당신의 친구나 당신이 소유한 영지(領地)가 쓸려간다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인류 가운데 하나이니,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보내어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나 알려고 하지 마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17세기 성공회 사제이자 시인이었던 존 던(1572~1631·아래 사진)의
‘영시(英詩)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제프리 초서(1340∼1400년·아래 사진)는 프랑스어나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인 영어로 작품을 쓴 첫 번째 작가로 불린다. 그는 근대 영어의 모태가 되는 중세 영어 정착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그는 영국 런던의 부유한 포도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16세 때 얼스터 백작 부인의 사동(使童)으로 출세를 시작했다는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이후 군인, 외교사절과 정부 관료 등의 공직을 두루 지내며 글을 썼다. 그가 언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
독일의 헤르만 헤세(1877~1962·아래 사진)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시, 인간의 내면과 시대적 상황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소설로 한국인의 사랑을 오랫동안 받아온 작가이다. 헤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에 그의 종교성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0년 이상 경건주의적 혈통이 이어져 내려온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오랫동안 인도에서 선교사로 지낸 외할아버지를 비롯해 많은 친척이 목사였다. 그는 가족들을 ‘국제적인 선교인 공동체’라고 말할 정도로 기독교 가치관이 삶을 지배했다. 그러나 헤세는 이런 가풍 속에 때론 도망가고 싶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4월이면 한 번쯤 듣는 말이다. 이 말은 20세기 영미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T S 엘리엇(1888~1965·아래 사진)의 장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비롯됐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길러 내고/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봄비로 둔한 뿌리들을 일깨운다/겨울은 우리를 따듯이 지켜주었다/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휘덮어/마른 덩이줄기로 어린 생명을 키웠다….”(‘황무지’ 중) 얼었던 땅이 녹고 라일락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봄날도 시인에겐 전쟁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을
영국의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아래 사진)는 ‘뛰어난 관찰자’였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봤다. 연약한 인간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가면을 쓰고 자신을 지키는지, 음모가 어떻게 출세에 작용하고 어떤 정치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미움 속에 어떻게 사랑이 싹트고 사랑 속에 미움이 싹트는지, 폭력이 어떻게 또 다른 폭력을 낳는지 등에 대해 후대 심리학자들이 인간 심리를 탐구할 때 사례로 삼을 정도로 심리와 행동 관계를 치밀하게 표현했다. 그는 성격 묘사의 수단으로 성서의 원문을 사용하기도 했고, 작품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1803∼1882·아래 사진)은 다양한 얼굴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영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초기 미국인들에게 정신적 독립을 선언한 ‘정신적 스승’이었고, 노예제 폐지 등 당시 예민한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해 온 ‘개혁가’였다. 또 그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너새니얼 호손, 토머스 칼라일 등 당대 문인들과 영적 교감을 나누며 내부의 정신적 자아가 외부의 물질적 존재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당대의 초월주의 모임을 이끌어간 ‘문학
스웨덴의 국민작가 셀마 라겔뢰프(Selma Lagerlof·1858~1940·아래 사진)는 최초의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 셀마 라겔뢰프란 이름이 다소 낯설다면 북유럽 아동문학의 최대 명작으로 꼽히는 ‘닐스의 신기한 여행’(1907)을 떠올려보자. 스웨덴 남부 출신 소년이 엄지손가락만큼 작아져 거위를 타고 세계를 모험하는 내용이다. 스웨덴 아이들의 지리 공부를 위한 부교재를 써달라는 교육부 청탁으로 쓰게 된 이 책은 현재까지 세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라겔뢰프는 이 책으로 190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4년 후, 노벨
영국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G. K. Chesterton·1874~1936·아래 사진)은 당대에 가장 뛰어난 ‘정통 기독교 지지자’였다. 그는 자신의 신앙과 신학이 관념이 아니라 삶 안에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역설의 거장’이라는 칭호를 얻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미 알려진 사실을 최대한 다시 파고드는 사람이다. 나는 내 안의 이단적 요소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걸 다시 한번 정련하니 순수한 진리가 나타났다.” 그가 오랜 씨름 끝에 발견한 것은 실은 오래전에 구축돼 있던 정통파 신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