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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잃은 단장의 슬픔을 사랑·나눔의 꽃으로 피우다

사별의 역경을 타인 향한 베풂으로 승화한 크리스천 부모들

  • 기사입력 2023.06.03 03:00
  • 최종수정 2023.06.03 07:19
  • 기자명 신은정 양민경

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윌리앙 아돌프 부그로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모성을 담은 그림도 많이 그려 어머니가 아이들을 품에 안고 있는 정겨운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작품 중엔 비극적인 상황을 표현한 그림도 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벨의 죽음을 모티브로 삼은 ‘처음 맞는 비탄’(the first mourning)이다. 그림은 죽은 아벨이 아담의 무릎 위에 누워 있고, 이브는 아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애통해하고 있다. 성경엔 아벨의 죽음에 대해 아담 부부의 반응이 나오지 않지만, 화가는 이들 부모의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부그로는 실제로 결혼 이후 얻은 자식 5명 중 4명을 잃었다고 한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끔찍한 고통은 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욥은 그의 자녀들이 식사 도중 집이 무너져 모두 사망했을 때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렸”다.(욥 1:19~21) 자녀를 잃고 상상하기 힘든 고난을 겪은 크리스천 부모가 있다. 이들이 하나님을 원망한 순간이 왜 없었을까. 하지만 그들 중엔 사무치는 슬픔을 딛고 죽음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썼던 사람들이 있다. 천국에 간 아이를 가슴에 묻기보다는 한 알의 밀알로 세상에 뿌리길 주저하지 않았다.
 

‘선한 계획표 안에서 그리고 사명으로’

 

배우 진태현(오른쪽)이 지난달 20일 장애 아동을 위한 기부 마라톤을 마친 뒤 아내인 배우 박시은과 완주를 축하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연예계 대표 잉꼬부부로 잘 알려진 박시은 진태현은 지난해 8월 출산 2주를 앞두고 아이를 떠나보내는 큰 아픔을 겪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난임으로 고생했다. 누구보다 2세를 기다린 부부는 아무 이유 없이 심장이 멈춘 아이를 결국 품에 안지 못했다. 부부는 이로부터 9개월이 지난 최근 예배 사역 단체 ‘피아’ 유튜브에 출연해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믿는 마음으로 고난을 이겨내고 있다고 간증했다.

박시은은 “아픔은 크리스천이 아닌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며 “하나님이 없었으면 나도 유산의 아픔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모든 시간을 주관하고 허락하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견뎌낼 수 있었다. 마음이 아프지만 ‘뜻이 있으시겠지’라는 마음을 품는다”며 “나에겐 하나님이 계시니 불행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라고 고백했다. 진태현도 “하나님의 계획표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필연의 시간들”이라며 “태은이가 우리 곁을 떠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두 사람은 딸 이름으로 기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진태현은 매달 기부 마라톤에 참여해 어려운 가정의 아이를 돕고 있다.

 

 

 

기업인이자 유튜버 부부인 비글부부가 둘째 아이 출산에 앞서 첫째와 함께 찍은 만삭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화장품 쇼핑몰 CEO이며 크리스천 유튜버로 활동하는 ‘비글부부’의 하준맘·하준파파(본명 박미연·황태환)는 3년 전 돌도 지나지 않은 둘째 아들을 잃었다. 사인은 급성 심장마비. 밝은 모습으로 육아를 공개하던 터라 많은 이들이 부부와 함께 울었다.

‘비글부부’는 이후 지난 2020년 8월쯤부터 근황을 공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10억원을 출연한 사회공헌재단을 설립하고 강연 방송에도 출연했다. 아들의 죽음이 자신에게 남긴 의미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특히 하준파파는 성경 속 다윗이 아들의 죽음 후 슬픔을 이겨내는 모습(삼하 12:15~23)을 통해 자신도 ‘많은 사람을 살리자’고 결심했다 한다.

 

 

 

 

사회 환원으로 승화

 

 

 

고계석(뒷줄 오른쪽)씨가 딸 혜륜이를 기리며 남태평양 바누아투에 설립한 혜륜유치원에서 현지 아이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고계석씨 제공


기부와 장기 기증, 재단 설립 등으로 자녀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크리스천 부모도 있다. 고계석(58)씨는 2014년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로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둘째 딸 혜륜이를 잃었다. 고씨는 아이 장례식을 치르던 날 유족 보상금인 4억원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선교사가 꿈이던 딸을 위한 결단이었다. 이후 2016년 중순 남태평양의 가난한 섬 바누아투에 ‘혜륜유치원’이 세워졌다. 선교단체를 통한 후원도 꾸준히 이어져 최근 현지엔 초·중·고등학교가 잇따라 문을 열었다. 고씨는 나머지 보상금인 2억원을 딸이 입학했던 부산외대에 기부해 어려운 학생을 후원했다.

‘강남 스쿨존 사고’로 지난해 12월 아들 이동원(9)군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부모는 아들 이름을 딴 장학회를 만들고 지난 28일 형편이 어려운 신학생과 목회자·선교사 자녀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했다. 아버지 이모씨는 서울 서초구 새로운교회(한홍 목사)에서 열린 ‘동원장학회 제1회 수여식’에서 “동원이의 작지만 아름다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실천하고자 이 장학회가 만들어졌다”며 “복음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금옥(83) 사모는 지난 4월 중순 뇌사 판정을 받은 40대 아들의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서울 강북의 작은 교회 목사의 가정에서 자란 장천광(46)씨는 회사 기숙사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옮겨졌지만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김 사모는 대학 시절 아픈 친구를 위해 장기를 기증하고 싶다고 졸랐던 아들의 말이 떠올랐고, 남편과 두 형제와 상의해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장씨의 심장과 좌우 신장, 폐장은 각기 다른 4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은 과거 교통사고로 사망한 두 자녀의 이름을 따서 청년 창업 활성화를 위해 ‘윤민창의투자재단’을 세웠고, 학교폭력에 아들을 잃은 이대봉 참빛그룹 회장은 가해자를 용서하고 아들이 다녔던 서울예고와 예원학교를 인수해 키웠다.

 

 

 

건강한 이별 위해 교계도 노력해야

 

 

 

그래픽=신민식


자녀 상실의 고난이 왔을 때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하는 의구심을 품는 일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장로 직분으로 교회를 오랫동안 섬긴 고씨는 9년이 지났지만 딸 아이의 유품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동원군의 아버지 이씨도 장학회 수여식에서 “동원이가 하나님과 천국에서 행복하게 잘 지낼 걸 알지만 육신의 아버지인 제가 믿음이 미천해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직 슬퍼한다”며 흐느꼈다. 김 사모 역시 아들이 장기기증을 한 지 한 달이 넘는 요즘에도 수시로 찾아오는 슬픔에 가슴을 치며 하나님을 찾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세상을 떠난 자녀와 건강하게 이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애도 기간과 주변의 이해,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감리교신학대 김기철(기독교심리상담학) 교수는 “조급한 마음으로 일상을 회복하거나 의미를 찾기보다는 마음 돌봄이 온전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가족 지인을 향해서는 “유가족에게 ‘신앙인다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신앙인다움’에 매몰되면 유가족은 온전히 애도하지 못하고 슬픔을 봉인해 마음 깊은 곳에 가둘 수 있다”며 위로에도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구약성경 사무엘하에서는 사울의 후궁이었던 리스바 얘기가 나온다. 당시 이스라엘에 기근이 지속되자 하나님은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죄 방법을 물었고 기브온 거민들은 사울 가문의 자손 7명을 달라고 요구한다. 이에 다윗은 사울의 다섯 손자와 리스바의 두 아들을 기브온 사람들이 목매달도록 허락했다. 이후 리스바는 베옷을 입은 채 죽은 7명의 시신을 지켰다. 베옷은 슬픔과 애도를 상징한다. 리스바는 기근이 끝날 때까지 수 개월간 아들의 죽음을 애도한다. 다윗은 리스바의 행위에 감동해 7명의 시신을 사울과 요나단의 시신과 함께 정중히 장사지냈다.(삼하 21:1~14) 자식의 죽음에 대한 모친의 애도가 다윗왕과 사회를 감동시켰던 것이다.

교회 등 신앙공동체가 유가족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미국 텍사스 쇼핑몰 총기 사고에서 한인 부부 성도가 목숨을 잃자 교회는 유가족 트라우마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한국에서는 라이프호프기독교자살예방센터, 두드림자살예방중앙협회, 한국목회상담협회가 공동으로 제작한 유가족 돌봄 매뉴얼이 있다. 유가족을 위한 집단 상담 프로그램 등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신은정 양민경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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