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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세에 첫 작품전 ‘자연의 풍경’ 열고 있는 정옥희 권사… ‘한국판 모지스’ 할머니, 교회 세운 독실한 크리스천

둘째 사위 강석진 회장 ‘그림 스승’
모지스 화집도 보며 상상력 입혀
60여 작품엔 자연과 어울린 십자가

  • 기사입력 2023.04.28 03:02
  • 기자명 서윤경
‘자연의 풍경’을 제목으로 한 작품들. 지난해 그린 파란 소가 뛰어놀고 있는 작품(위쪽)과 2019년 선보인 농촌 풍경(아래쪽). 십자가 첨탑이 달린 교회가 눈에 띈다. 강석진 회장 제공

초록 들판엔 시공간을 넘나들 듯 길이 나 있고 파란 소는 들판을 달린다. 고구마가 가득한 소쿠리 앞 가족의 모습은 정겹기 그지없다. 풍경화에 상상력을 보탠 그림 곳곳엔 교회도 빠지지 않는다. 수채 물감으로 그린 이 풍경화들은 8호 사이즈의 캔버스(32×43㎝)에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갤러리 ‘라메르’에서 개막한 ‘정옥희 전시전-자연의 풍경’에서 마주한 그림들이다. 작품을 그린 주인공은 한국 나이로 98세, 백수를 코앞에 둔 정옥희 권사다. 4년 전 요양원에 머물고 있던 그는 처음으로 붓을 들었다. 매주 한개 꼴로 지금까지 200점 넘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그는 ‘한국판 그랜마 모지스’라 할 만하다. 안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1860~1961)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랜마 모지스’라 불리며 미국인의 사랑을 받았다.

한국의 그랜마 모지스는 특별한 이력이 하나 더 있다. 젊은 시절 ‘복음의 진앙’인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데 열심이었다. 교회에 대한 사랑은 사위에 이어 딸까지 목회자로 서도록 이끈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린 풍경화엔 십자가 첨탑의 교회가 더 정겹게 다가온다.

1925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정 권사는 결혼 후 7남매를 키우면서 여성 사업가로 살았다. 당시 여성으로선 흔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였다. 동시에 남다른 신앙인이기도 했다.

전시전에서 만난 셋째 딸 이복진(69)씨는 “어릴 적 30대 중반의 어머니가 내 머리카락을 빗겨 주면서 동네 교회에 가자고 하신 게 기억난다”면서 “모태신앙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젊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신 듯하다”고 회고했다.

정 권사는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 한림교회를 세웠다. 담임목사는 첫째 사위였다. 사위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엔 그의 첫째 딸이 목사 안수를 받아 사역을 이어갔다. 넷째 사위인 강석남(68) 장로는 “한림교회에서 헌신한 장모님은 이후 은평구 세광교회로 옮겼다. 지금도 세광교회 유창진 목사님이 집으로 오셔서 어머니와 함께 예배를 드리신다”고 말했다.

정 권사가 그림을 시작한 건 5년 전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경색 때문이다. 요양원에 있는 정 권사를 둘째 사위가 찾았다. 현재 화가이자 시인이며 경영자인 전 제너럴일렉트릭 코리아 회장인 강석진(84) CEO컨설팅그룹 회장이다.

한국 나이로 98세인 정옥희(오른쪽) 권사의 첫 전시회가 2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렸다. 정 권사가 그림 스승인 사위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강 회장은 “장모님은 나에게 초등학교에 다니던 일제 강점기 시절 그림을 잘 그려 선생님이 자기 그림을 학교 복도에 붙여놨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그때 든 생각이 ‘장모님에게 그림 그릴 시간을 주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수채물감 붓 등 그림 도구를 구입해 요양원을 찾았다. 2019년 당시 94세였던 정 권사의 화가 인생이 막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강 회장은 “초등학생 가르치듯 기본부터 알려줬는데 반년 후 실력이 쑥 올라갔다”고 전했다.

정 권사는 모지스와 강 회장의 화집을 참고하며 기억과 상상력을 더해 그림을 그렸다.

팬데믹으로 요양원 면회조차 금지됐을 때도 붓질은 멈추지 않았다. 오랜 세월 그가 직접 그려 온 인생의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다. 하지만 이씨는 “작년 말 대상포진에 걸린 뒤 한참 고생하셨고 보청기를 착용해야 겨우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대화가 어렵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그림 이야기를 할 때면 정 권사의 표정이 달라졌다. ‘전시를 하니 어떠냐’는 질문에 “좋다”며 화사한 미소를 지었고 ‘그림을 계속 그려 달라’는 요청엔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도 건넸다. 아쉬움을 달래준 건 역시 그림이었다.

작품들 곳곳에 등장하는 십자가 첨탑의 교회들이 정 권사가 건네는 또 다른 미소 같았다. 전시는 다음 달 2일까지 계속된다.

글·사진=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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