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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Q Sign #1] 40년만에 돌아온 나의 모국, 대·한·민·국

  • 기사입력 2022.12.05 16:05
  • 최종수정 2023.04.21 13:57
  • 기자명 전병선

2022년 5월 아랫글의 저자인 김승인 목사가 무작정 국민일보를 찾아와 책을 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40여년 이민 생활을 했고 목회자인데, 하나님이 자신을 극적으로 살렸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두툼한 원고와 본인을 증명할 수 있는 각종 사진과 증명서를 보여줬습니다. 이후 몇 번을 만났지만 출판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글이 사장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 하나님이 무엇인가 계획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온라인 글 연재를 제안했습니다. 아랫글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김 목사의 바람처럼 이 글이 누군가에게 도전이 되고 은혜가 되며 하나님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지금 보고 있는 광경들. 마주치는 한국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일까. 운전하고 나가지 않아도 골목마다 있는 마켓들. 푸짐한 채소. 들려오는 모국어. 입국하고 두 달 열흘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미국에 이민을 간 날짜는 1982년 12월 5일이었다. 미국에 사는 큰 시누이로부터 형제초청을 받고 해외개발공사를 다니며 이민수속을 한 지 4년여, 결과는 “비자 거절”이었다. 피초청자인 남편의 출생지가 중국의 만주라는 사실 때문에. 그 당시에는 미국과 중국이 열려 있지 않았다.

진실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미국으로의 이민 길은 차단되었고, 그렇다고 한국에 머물 수 있는 그 어떤 경제적 여력도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가운데서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달려갔다. 일찌감치 일어나 부엌에서 김밥을 한 쟁반 싸서 단칸방으로 들여놓고, 오랫동안 준비한 헌금(어려운 처지였지만 푼돈을 모으고, 지폐로 바꾸고, 빳빳한 새 지폐로 바꿔서 모아 놓은)과 숨겨 놓았던 성경책을 들고, 온다 간다는 말 없이 여의도로 달려갔다.

그때가 1982년 봄, 첫 딸기가 나오던 무렵이었다. 도착하고 보니, 이미 교회 문은 닫혔고, 다음 예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길고 두꺼운 행렬 가운데 서 있게 되었다. 그 가운데 있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들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먼저 예배를 드린 성도들이 쏟아져 나왔고, 기다리던 무리가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이 성전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이왕이면 가운데 앞자리에 앉으려고 어정거리던 나는 쏜살같이 자리를 채워버리는 성도들에 밀리고 밀려서 뒷자리에 겨우 앉게 되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거대한 가슴이 뒤에서 나를 끌어 앉는 것이 느껴졌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객지에 나가서 모질게 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시린 손과 얼은 발로 고향 집 아랫목으로 돌아와 앉게 된 기분이었다. 콜타르같이 진하고도 탁한 눈물이 한참 쏟아지고 나자, 맑은 눈물이 솟아났다.

마침내 조용기 목사님을 따라 “나는 죄인입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영접 기도를 드리고 준비해온 헌금 봉투에 “믿음의 씨앗을 심습니다. 제 가족들을 구원해 주시옵소서”라고 써서, 심방요청 카드와 함께 헌금 주머니에 넣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온 세상이 변해 있었다. 세상이 온통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몸을 휘감아 도는 봄바람이 너무나 감미로워서, 마치 태초의 에덴동산을 거니는 것처럼 황홀했다. 그렇게 딱 한 번 교회에 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이민 비행기를 타기까지는 다시는 교회에 갈 수가 없었다. 그가 눈에 불을 켜고 붙어 앉아서 협박하고 감시했기 때문이었다. 오직 동네의 구역예배에만 겨우 그의 눈을 피해 참석을 하곤 했다.

이민 비자가 취소되었다고 그대로 앉아있을 처지가 아니라서, 미국대사관에 탄원서를 넣게 되었다. 말이 되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서투른 영어로 탄원서를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대사관으로부터 미국이민 허가편지를 받게 되었다. 기타 항목의 맨 마지막 조항은, 서울에서 출생하고 서울에서 자란 아내와 함께 같은 날, 같은 비행기로 대한민국을 출국하고 미국에 입국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기적같이, 우리 가족은 영하 10도의 날씨인 1982년 12월 5일에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12월 5일 저녁에 미국 캘리포니아 엘에이 공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4명의 가족은 이미 와 계시던 시모와 막내 시누이가 살고 있던 방 하나짜리 오래된 아파트로 들어가 합류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빈손이었던 우리는(나는) 그달로 엘에이 도심에 있는 바느질 공장에 나가서 일하기 시작했다. 미국 이민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정신없이 흘러간 시간 덕분에, 9살과 11살에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넌 아이들은 어느새 49세와 51세가 되었고 그들의 자녀인 손자녀들이 모두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76세의 할머니가 되었다.

문득문득 한국에 오고는 싶었지만,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여전히 빈손인지라. 그러다가 뜻밖에도 신학대학 동기인 친구 목사의 요청으로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주최하는 세계선교사대회에 나오게 되었다. 돌발적인 상황이었다. 그렇게 2022년 5월에 한국에 나오게 되었고, 미국에 이민을 하였던 많은 목사, 선교사들이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6월에 미국으로 돌아간 나는, 마침내 한국으로 나아 오기로 작정하고 필요한 과정들을 밟아서 9월 15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대한민국에 입국할 수가 있었다.

목회하는 막내 여동생이 미리 월세방을 얻어 놓았기 때문에 도착하는 즉시 입주를 할 수가 있었다. 오던 날로 선별 진료소에 가서 코로나 테스트를 하고, 매일매일의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거소증을 신청하고 당장에 필요한 생필품들을 사들였다. 좁은 면적이지만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을 무렵, 비가 심하게 오면 안전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반지하였다.

서둘러서 방을 내놓았다. 마음 졸이는 일이었다. 2년 계약을 한 방을 한 달 반 만에 내놓고 교회 성전과 더 가까운 곳에 있는 2층 방을 계약했다. 새 입주가가 정해지지도 않고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리고,…입국한 지 딱 2달째 되는 날인 11월 15일에 이사를 했다. “이사”는 언제나 쉽지 않다. 돈도, 힘도 많이 든다.

감사하게도 거주하였던 방의 새로운 임자가 늦지 않게 나타났다. 새로운 입주자가 12월 5일에 입주하므로 19일 치의 월세를 추가로 부담을 하게는 되었지만, 이 정도로 일이 정리된 것은 또 하나의 기적이요 하나님의 은혜다.

부족한 나를 만나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아바 아버지께 영광과 찬양, 존귀와 높임을 올려 드리는 인생의 남은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내게 기회를 주신 국민일보에 감사를 드린다.

이민 40년의 세월,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신 그 모든 순간순간을, 그 명백한 사실(Fact)들을 증언하고 나누게 됨을 기뻐하며. 2022년 11월 27일 주일 오후에. 김승인 목사 드림.

◇김승인 목사는 1947년에 태어나 서울 한성여고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LA 기술전문대학, Emily Griffith 기술전문대학을 나와 패션 샘플 디자인 등을 했다. 미국 베데스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북미총회에서 안수받았다. 나성순복음교회에서 행정 비서를 했다. 신앙에세이를 통해 문서선교, 캘리포니아에 있는 복음방송국(KGBC)에서 방송 사역을 했다.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논픽션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했다.

정리=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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