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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를 화음으로 ‘희망’을 연주하다

장애·비장애인 단원 반반씩 구성된 에이블뮤직그룹
내달 4일 손열음 피아니스트와 협연

  • 기사입력 2022.11.26 03:01
  • 기자명 우성규
장애인과 비장애인 연주자가 함께하는 실내악 전문 앙상블 에이블뮤직그룹의 단원들. 에이블아트센터 파이플랜즈 제공

연습이 시작되자 이정현(15)양의 등이 쫙 펴졌다. 몸을 잘 가누기 어려운 발달 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같이 겪고 있지만, 첼로만 잡으면 정현양의 표정이 달라진다. 무서운 집중력으로 악보를 바라본다. 활을 든 오른손에 힘이 느껴진다. 연습 도중 바이올린을 이끄는 강민정 연주자의 조언이 쏟아졌다.

“정현아, 비브라토 예쁘게.” “이건 멘델스존이야, 브람스가 아니야, 부드럽게 가볍게 해보자.” “너의 울림을 책임져야 해. 울림을 들으며 세 번째 마디를 찍듯이 맺고 그다음 둥글게….”

지난 12일 경기도 수원 등불감리교회(장병용 목사)가 있는 에이블아트센터 6층 도서관에선 에이블뮤직그룹의 실내악 연습이 한창이었다. 에이블뮤직그룹은 2010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전문 체임버 앙상블로 출발했다. 장애가 있는 단원 절반과 비장애인 단원 절반이 함께해 최고 수준의 음악을 선사하는 것이 목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연주자가 일대일로 붙어서 함께 연습한다. 이들은 다음 달 4일 수원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세계적 피아니스트 손열음(36)씨와 협연을 앞두고 있다.

연습을 지켜보는 정현양의 어머니 양성선(49)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양씨는 정현양과 첼로를 차에 태우고 주거지인 충북 청주에서 수원까지 연습이 있는 날마다 왕복 2~3시간 고속도로를 달려 찾아온다. 눈물 없이 키우기 어려웠던 자녀 이야기 대신 양씨는 딸의 재능을 얘기했다.

“정현이는 생후 18개월 때부터 노래로만 소통했어요. 음악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한번 들은 노래를 그대로 따라 부르는 거예요. 다섯 살 때는 언니의 멜로디언으로 애국가를 연주했고요. 절대음감이라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죠. (스마트폰을 열어 보이며) 이게 정현이가 심심할 때 그린 그림이에요. 사인펜으로 수십 가지의 점과 선을 통해 그린 모자이크인데, 이게 차이콥스키의 악보래요. 교향곡을 이렇게 그림으로 표현한 거예요.”

정현양 같은 친구를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이라고 부른다. 자폐증이나 지적 장애가 있는 이들이 음악 미술 기계수리 암기 계산 등의 분야에서 기이할 만큼 천재적 재능을 발휘하는 현상이다. 영화 ‘레인맨’에서 톰 크루즈의 형이자 자폐증 환자로 나온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실존 모델 킴 픽은 미국의 우편 번호부를 통째로 외우고 읽은 책 대부분을 암기한 것으로 유명했다. 정현양에겐 음악이 그렇고 첼로가 그렇다. 대부분 악보를 보지 않고 통째로 외워서 연주한다.

양씨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정현양 대신 딸의 연주를 이렇게 들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음악으로 사람들의 가슴에 심금을 울리면 좋겠어요. 마음이 따듯한 연주자 선생님들이 애들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며 사랑을 느꼈어요.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화내지 않고, 힘들다고 싫다고 먼저 일어서지 않으시죠. 그 기다림에 보답을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의 음악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면 좋겠어요.”

협연할 손열음 피아니스트.

이번 연주회에서 손열음 피아니스트는 에이블뮤직그룹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협연한다. 해외 체류 중인 손 피아니스트와 이메일을 이용해 인터뷰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연주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다른 분야와 달리 음악에선 대단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분들이 일상생활에선 장애가 불편 요소가 될 때가 있겠지만, 음악에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친분이 있는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노부유키 츠지군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청각이 비장애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발달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이 그의 음악 스타일을 더 차별화시킵니다. 저도 그와 함께 연주할 때는 더 섬세하게 들으려 노력했습니다.”

-재능기부로 함께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연주회에 임하십니까.

“음악이란 매개체로 소통하기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아주 자연스럽고 쉽게 음악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에이블아트센터에서 몇 년 전부터 연주 요청을 받았고 꼭 함께하고 싶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번번이 불발되고 성사 직전까지 갔던 연주는 코로나19로 취소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장애인들이 코로나 같은 질병에 더 취약할 수 있어 함께 모여 연습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씀을 듣고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제는 위험과 어려움을 떨쳐내고 다시 기쁜 마음으로 모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원주 큰나무교회(김홍구 목사)와 독일 하노버 본향교회(손창근 목사)에서 신앙생활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저의 어린 시절부터 저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해주신 교회 식구들 -할머니 할아버지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들 그리고 목회자님들- 덕분에 이렇게 감사하게 살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늘 그 누구도 아닌 하나님께 칭찬받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게 제 삶의 유일한 목표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장병용 목사가 지난 12일 수원 에이블아트센터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 예술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수원=우성규 기자

에이블뮤직그룹은 에이블아트센터에 소속돼 있다. 에이블아트센터 이사장은 장병용(64) 수원 등불감리교회 목사다. 장 목사는 “‘장애인’을 뜻하는 영어 단어 ‘디스에이블드’(Disabled)는 장애를 결핍으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능력하고 불가능한 존재란 인식인데, 여기서 탈피해 결핍이 아닌 차이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장애가 결핍이 아닌 차이라면, 장애로 인해서 하나님이 그 안에 보여주시는 또 다른 가능성, 영적이고 내면적인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이블아트가 또 다른 가능성의 예술이라면, 장애인 음악가나 장애인 미술가는 어떤 재능을 보여주고 있을까. 평생 곁에서 이를 지켜본 장 목사는 원초적 생명력, 순수한 감성, 무한한 상상력을 동시에 느낀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현대의 예술가들이 열렬히 찾아다니는 가치입니다. 장애인 그림과 음악에는 이들만이 가진 원초적 생명력이 있어요. 배워서 얻는 게 아닌 원래부터 가진 힘이죠. 지적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에 대여섯 살 지능을 가진 경우도 많은데 그러다 보니 순진무구한 영혼이 그려내는 따듯한 감성이 배어 있어요. 또 차원을 넘어서는 무한한 상상력도 강점이에요. 함께하는 일류 예술가들이 이들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며 자기들이 상상력을 배워야겠다는 말을 하곤 해요.”

5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연주회의 제목은 ‘컴패션’이다. 손 피아니스트의 티켓 파워로 이번 공연은 예매 사이트를 열자마자 매진됐다. 장 목사는 “컴패션은 성경에서 헬라어 ‘스프랑크니조마이’로 나오며 애를 끓는 마음인 긍휼 자비 연민을 표현한다”면서 “올해 수원 세 모녀 사건 등으로 참 마음이 아팠는데, 수원시와 함께해 연주회 수익금을 청소년 한부모 가정 등에 나눌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수원=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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